삼일운동비사 (三一運動秘史)
- 지정번호
- 구분
- 관내 소장 문화재
- 수량
- 1
- 소유자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 주소
-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1959년 독립운동가 이병헌(李炳憲, 1896~1976)이 저술한 3·1운동 관련 도서이다.
이병헌은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일어난 독립선언식 진행상황을 기록하고 만세운동 준비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인물로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 인쇄를 돕고 전국에 배포하였다. 『삼일운동비사(三一運動秘史)』에는 을사늑약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 시기까지의 독립운동과 민족대표 33인 및 3·1운동 참여자들의 공판기록,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3·1운동의 경과가 지역·일자별로 정리되어 있다. 화성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 전개 과정 역시 수록되어 있으며, 제암·고주리 학살사건 및 송산·서신·우정·장안 지역 독립운동가 이름이 실려있다. 『삼일운동비사』 집필 당시 정보 수집이 쉽지 않았고, 한 개인이 수집·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되어 오류나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3·1운동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삼일운동비사』에 기록된 화성지역 3·1운동
△ 동탄면 구오산리에서 천도교인 박두병·김재천은 김진성과 합의한 후 인근 촌락과 연락하여 만세를 불렀다. 또한, 기독교인과 연락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이동하여 만세를 불렀는데 극히 평온적으로 하여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 사강리에서는 약 700여 명의 군중이 주재소 앞에 집합하여 만세를 불렀다. 수원경찰서 사법계 주임 노구치(野口廣三) 순사부장이 10여 명의 순사와 보명 5명을 인솔하여 진압하고자 했으나 되지 않았다. 이에 노구치가 자전거로 군중을 몰며 권총을 발사하여 진압하고자 했으나 군중이 던진 돌에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그 때 권총 소리가 요란히 나자 군중들이 돌을 던져 현장에서 즉사하게 하였다.
△ 향남면 발안리에서는 장날을 이용하여 수천 명이 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하였다. 경찰이 제지하려했으나 실패하였고 경찰의 발포로 부상자 2, 3명을 내고 해산하였다.
△ 우정 화수리에서 군중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는데 경찰이 강제로 진압시켰다. 군중은 흥분하여 격투하다가 일본인 순사 1명을 현장에서 타살하였다.
△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의 학살사건은 천인공노할 잔인한 사건이다. 수원에 있는 수비대는 4월 15일 발안 장날을 이용하여 제암리로 가서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을 예배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중략) 예배당에 불을 놓자 홍순진은 밖으로 뛰어나오다가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또 고주리로 이동하여 천도교인 김흥열의 가족 6인을 포박한 후 불을 질러 생화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