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순국기념탑(1959)
- 지정번호
- 구분
- 관내 소장 문화재
- 수량
- 1
- 소유자
-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 주소
-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탑이다. 학살이 일어난 제암교회 터에 세워졌다. 기념탑에 새겨진 글씨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9李承晩, 1875 ~ 1965)의 필체이며, 하단부에는 제암·고주리 순국선열 29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1982년 학살현장에 새로운 기념탑이 세워지면서 이전하였고 현재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입구에 위치한다.
<비문>
기미년 삼월 일일 일본의 말굽 아래 십년 잠들었던 민족의 분노는 활화산 터지듯 일어나 삼일 독립운동이 선언되자 노도같은 백의민족의 자유를 부르짖는 백수항전의 드높은 함성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만길 불꽃을 올렸다. 죽음 아니면 자유를 달라 서리같은 총칼을 든 일본 헌병 앞에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불렀다. 이리같은 일본 헌병은 칼과 총으로 백의민족을 난도질쳤다. 경기도 화성은 역사 깊은 문화의 도시였다. 여기에 향남면 제암리 두렁바위 농가 사십호는 가난했으나 정신문명의 수준이 높았다. 동리 안에는 기독교 예배당이 있고 뜻있는 청년들은 예배당 안에서 나라 찾을 것을 항상 기도드렸다. 삼일운동이 터지자 그들은 봉화를 높이 들고 독립운동을 일으킬 만반 태세를 취했다. 독수리같은 일경은 이들의 행동을 노렸다. 마침내 음력 삼월 십육일 오후 일시경 일경들은 돌연 부락을 습격하여 청년 이십일명과 여인 이명 도합 십삼명을 무기로 위협하여 예배당에 감금하고 출입문을 폐쇄한 뒤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불길은 두렁바위를 사를 듯 하늘에 뻗쳤고 순국열사의 기막힌 통곡성은 아득히 구천으로 사라지는 채 예배당은 한줌의 재로 화해 버렸다. 이어 일경은 다시 고주리로 가서 주모인사로 지목된 천도교인 육명을 결박하여 나뭇더미에 세워 총살하고 불을 질렀다. 만고에 없는 일경의 잔인무도한 행동이었다. 스물아홉분의 순국열사는 이렇게 푸른피를 불속에 뿌려 겨레의 넋을 지켰다. 오늘 자주독립의 국가를 찾은 두렁바위 사람들은 순국열사의 명복을 빌면서 후세에 영원히 이 사실을 전하려하여 당시 피화처였던 예배당터에 정성을 모아 아담한 기념탑을 세운다. 전면은 대통령 리승만 박사 쓰시다. 월탄 박종화 짓고 동고 유근홍 쓰다 향남면 삼일운동 순국기념탑 건립 위원회 대표 박지영 세우다 단기4292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