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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백자청화정부인 영광정씨 묘지 및 지석함

지정번호
유형 제264호
구분
시도유형문화재
수량
0
소유자
송헌문화재단
주소
경기 화성시 향남읍 594

백자청화영빈이씨묘지·명기 및 석함(白磁靑華暎嬪李氏 墓誌․明器 及 石函)은 연세대학교 경내에 있던 영빈이씨(暎嬪李氏 : 1696 년~1764년)의 묘인 수경원(綏慶園)을 1970년 경기도 고양시서오릉(西五陵)으로 옮길 때 실시한 발굴조사시 출토된 유물이다. 2010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11호로 지정되었다.

영빈이씨는 영조(英祖 : 1694년~1776년)의 후궁으로 사도세자(思悼世子 : 1735년~1762년)의 어머니이자 정조(正祖 : 1752년~1800년)의 할머니인데 아들인 사도세자가 사망한 2년 뒤인 1764년 7월 26일에 경희궁(慶熙宮) 양덕당(養德堂)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 ‘의열(義烈)’이란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뒤에 사도세자가 장조(莊祖)로 추존되면서 그의 묘인 의열묘(義烈墓)는 원(園)으로 승격되어 ‘수경원(綏慶園)’이라는 이름이 내려지고, ‘소유(昭裕)’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사당은 현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新橋洞)에 있었는데, 처음에 ‘의열묘(義烈廟)’였다가 1788년(정조 12)에 ‘선희궁(宣禧宮)’이 되었고, 1870년(고종 7) 위패가 육상궁(毓祥宮)으로 잠시 옮겨졌다가 1896년에 다시 선희궁으로 되돌려졌으며, 1908년(순종 2)에 또 다시 육상궁으로 옮겨졌다. 현재 사당은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소재 칠궁(七宮) 안에 있다. 묘지는 청화백자로 제작한 2벌이 각각 방형석함 안에 모래에 담겨져 출토되었다. 한 벌은 5매로 완전하며 다른 한 벌은 4매로 제3매가 없다. 묘지 각 매의 옆 마구리에 ‘暎嬪全義李氏墓誌 第○’이라 쓰였고 아래쪽 마구리에 “共五”라 쓰였다. 묘지명 제목에 ‘御製暎嬪李氏墓誌’라 쓰여 있어 묘지문을 영조가 직접 지은 것을 알 수 있고, 글씨는 영조와 영빈 사이의 맏딸 화평옹주(和平翁主)와 혼인한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 : 1725년~1790년)이 썼다. 묘지문에는 영빈이씨의 가계와 그가 영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6녀에 관한 내용, 성품, 영조가 애도의 마음을 표한 글 등이 적혀 있다. 묘지명은 9줄 15자씩 구성되었으며, 글자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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